영상칼럼

 

 

신령한 것은 신령한 것에 의해서만 해석이 가능해요. 이해가 가능하다 말입니다.

그 말은 성령을 받지 못한 자들은, 그런 자들의 하나님 섬김, 

 

그리고 열심 있는 종교행위는, 전부 육적인 이해의 관점에서 나온 

가짜라는 뜻이에요.

 

바울은 진짜 신령한 것을 받은 자들에게서는, 

육신의 것이 거두어진다고 분명히 이야기합니다

 

(고린도전서 9:11)

11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똑같은 거예요. 신령한 것을 

뿌렸더니 어떻게 돼요?)  너희 육신의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

 

여기에서의 육신의 것은 단순히 헌신이나 헌금이나 봉사 등의 

열매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육신의 죽음을 말하는 거예요. 

 

신령한 것이 뿌려지면 육신의 것이 거두어지게 되어 있어요. 물론 사도가

고린도전서 9장에서 일차적으로 이야기하려 했던 것은, 헌금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단순히 성도의 소유를 털어내는 정도가 아니라, 

성도의 육적 자아 전체를 털어내는 능력과 임무를 가지고 

 

성도에게 임하는 거예요. 단순히 헌금을 털어내려고 가는 게 아니잖아요?

따라서 헌금은 성도의 육적 자아의 죽음! 그 죽음의 한 증상이지

 

그것 자체가 무슨 대단한 가치를 지닌 게 아닙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에 의해

육적 자아를 많이 털린 사람은 인색하지 않고, 기쁜 헌금을 하는 거죠.

 

그렇게 신령한 복음에 의해서, 육적 자아를 털리는 과정을, 자기 부인이라 그러고

그 자기 부인이라는 것은, 곧 창세전 언약 안에서, 그리고 십자가 안에서, 

 

이미 완료된 성도의 육적 자아의 그 죽음! 여러분은 이미 십자가에서, 

창세전 언약 안에서, 십자가에 못 박혔다 그러죠, 성경이? 과거완료예요, 그건요! 

 

이미! 그 육적 자아의 죽음! 완료된 육적 자아의 죽음을 확인해 가는 

필연적 과정인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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